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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에선 춤추는 우리도 주인공
2024.03.13 MORE현대무용·애크러배틱·브레이크댄스 3인방 인터뷰
‘벽에 저게 뭐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3월24일까지·이후 전국투어)는 도입부부터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시인 그랭구와르가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며 서막을 여는 순간, 무대 뒤 거대한 돌벽에 뭔가가 붙어 오르락내리락한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다. 흡사 ‘태양의 서커스’라도 보는 듯하다.
프랑스 뮤지컬은 19세기 발달한 오페레타(경가극)의 맥을 이어 보통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뤄진 ‘성스루’(Sung-Through) 형식을 취한다. 또 노래하는 배우와 전문 무용수를 따로 기용한다. 무용수는 대사를 대신해 등장인물 심리를 표현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선 무용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까닭이다. 대표 무용수 3명을 지난 7일 공연 전 대기실에서 만났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무용수는 댄서·애크러뱃·브레이커로 나뉜다. 댄서 황경미는 이번이 첫 뮤지컬이다. 8살 때부터 현대무용을 한 그는 국립현대무용단, 안은미 컴퍼니 등에 참여했다. 대한민국무용대상 대통령상도 받았다. “어릴 적부터 끼가 많아 뮤지컬도 해보고 싶었는데, 본업에 충실하느라 못했어요. 그러다 대학 선배 권유로 오디션에 도전했죠. 극 중 인물과 감정선을 나누면서 그걸 몸으로 표현하는 역할이에요. 안무는 대략 짜여있지만, 세부적인 건 그날그날 즉흥으로 하죠.”
애크러뱃 오홍학은 애크러배틱을 담당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한 그는 세계태권도한마당 우승 경험도 있다. 뮤지컬 하는 지인 권유로 19살 때 오디션 보고 2009년 공연에 처음 합류했다. 이후 아시아·유럽 투어를 포함해 16년째 함께하고 있다. “벽 타고, 레펠 타고, 커다란 종도 타고, 텀블링도 해요. 관객들은 다칠까봐 걱정하는데, 요즘은 안전장치가 잘 돼 있어서 괜찮아요.”
브레이커 이재범은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비보이다. 14살 때부터 브레이크댄스를 했다. 한국 최대 비보이대회에 참가한 그에게 한 외국인이 “뮤지컬 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끈질긴 제안에 “몇번만 하겠다”고 수락하고 2008년 국내 라이선스 초연에 합류한 게 오늘에 이르렀다. “브레이크댄스는 너무 딱딱해 보여서 부드러우면서도 기괴한 동작으로 바꿨어요. 매일 다른 동작을 즉흥으로 하는데, 비보잉의 상징인 헤드스핀과 에어트랙(두 손으로 번갈아 땅을 짚으며 다리를 들고 회전하는 동작)은 정해진 순서에 꼭 해요.”
이재범은 프랑스 오리지널 팀의 눈에 띄어 거의 모든 월드투어에 동참했다. 지난 3일 무려 1100회 공연을 달성했다. 그는 “한국보다 외국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큰 부상 없이 지금까지 해왔다는 점이 기쁘다. ‘너무 오래 하면 질리거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냐’고 묻곤 하는데, 매번 동작과 감정이 달라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사고와 부상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이재범은 십자인대가 두번이나 끊어졌다. 오홍학은 3층 높이 벽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는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착지한 뒤 공연을 다 마쳤는데, 나중에 신발을 신으려니 발이 부어서 안 들어가더라. 이후 ‘오홍학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장면 멋있었다’는 관객 리뷰를 봤다. 사고를 쇼로 봐준 것이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황경미는 무대에서 과호흡이 온 적이 있다. 그는 “한번은 콧물이 자꾸 나서 손으로 닦았더니 손이 빨갛게 됐다. 코피가 난 것이다. 그래서 급히 다른 친구가 대신 나갔다”고도 했다.
매 공연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셋은 입을 모았다. “인물의 감정선을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 인물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이 좋아요.”(황경미) “태권도로도 무대에 많이 섰지만, 여기선 실컷 놀 수 있어 재밌어요. 마이크만 안 찼을 뿐이지 노래도 열심히 부르거든요. 끝나면 목이 다 쉰다니까요.”(오홍학) “공연에 에너지를 다 쏟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병든 닭처럼 졸아요. 그래도 대충이 안 돼요. 다들 너무 힘든 거 아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더 친해지는 것 같아요.”(이재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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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집시, 파리를 홀리다
2024.03.11 MORE올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2024 파리올림픽은 파리에 있는 유구한 문화유산에서 올림픽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베르사유궁전 정원에서 승마, 앵발리드에서 양궁, 그랑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식인데 그냥 찍어도 그림이 될 풍경에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꿈 같은 일은 많은 이를 설레게 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찬란한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구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파리올림픽에도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다.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2019년 화재가 발생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올해 4월까지 복원하고 싶어 했지만 코로나19 확산과 환경 문제 등으로 계획이 미뤄져 올림픽이 끝난 뒤인 올해 12월에나 본모습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를 상징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올림픽 기간에 제대로 못 본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이를 조금이나마 달랠 기회가 있다. 바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서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한국어 버전은 6년 만이다.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 때문에 꼽추인 콰지모도의 이야기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진짜 핵심 인물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다. ‘백년전쟁’, ‘페스트’ 등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교회가 타락을 거듭해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로 꼽히는 15세기를 배경으로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 대주교인 프롤로,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의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을 그렸다.
이들은 사랑은 저마다의 이유로 금지돼있다. 콰지모도는 순수한 영혼이지만 외모가 추하고, 프롤로는 성직자, 페뷔스는 이미 약혼한 몸이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랑 때문에 이들이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중세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원작에서는 에스메랄다가 만 16세의 소녀지만 뮤지컬에서는 30대의 유리아, 정유지, 솔라가 맡았다. 세 배우 모두 농익은 관록으로 세 남자는 물론 파리 전체를 홀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뽐낸다. 각자 매력이 달라 빠져들게 되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회전문 관객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다. 특히 이들이 과감히 맨발로 무대 위에 등장해 춤을 추는 모습은 집시 여인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프랑스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성 스루’(Sung through) 형식이다. 뛰어난 음악성과 운율을 살린 대사 및 가사, 노래와 연기를 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가 나뉜 점이 특징이다. 초반부터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춤과 마치 서커스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움직임 등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다뤄 대중성을 추구하는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매력이 있다.
남자들이 먼저 좋아해 놓고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에스메랄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에스메랄다는 비극을 맞는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그렇게 스러져가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희극적인 뮤지컬과는 다른 진한 여운을 남긴다.탄탄한 서사와 다양한 볼거리, 아름답고 절절한 넘버, 마음에 전해오는 감동이 어우러져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23개 나라에서 150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명작 뮤지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작품을 대표하는 넘버 ‘대성당의 시대’는 부르는 이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며 몇 번이고 듣고 싶게 한다.
3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 공연이 끝나면 부산(3월 29일~4월 7일), 대구(4월 12~21일), 경기 이천(4월 26~28일) 공연으로 이어진다.
류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