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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맨그룹] 그렇게 나는 ‘네 번째 블루맨’이 되었네

관리자 │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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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맨 그룹’ 내한공연 체험기


실내로 입장하는데 비옷을 나눠줬다. 1층 B구역 2열 15번. 물감 등 액체가 튈 수 있는 스플래시(splash) 구역에 속했다. 앞에서 넷째 줄(회당 93석)까지로, 객석에 방수포가 씌워져 있었다. 비옷으로 무장하고 후드까지 쓰고 착석. 무대를 감싼 PVC 파이프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안내원이 다가왔다. “혹시 공연에 참여해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럽시다.”

‘블루맨 그룹’ 내한공연에서 블루맨 3명이 PVC 파이프를 이용해 타악을 연주하고 있다. 이 비언어극은 마지막에 언제나 이렇게 관객이 모두 일어나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블루맨 그룹(Blue Man Group)’은 비언어극 역사상 가장 성공한 쇼다. 온통 파랗게 분장한 ‘블루맨’ 3명이 등장했다. 자막이 요구하는 대로 관객이 반응하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머리를 끄덕이고, 허공에 손을 흔들고, 두 팔 들어 소리치고···. 이런 몸짓언어가 만발했다. 블루맨들이 마시멜로를 던지고 입으로 받은 뒤 그것을 물감 삼아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자 관객은 환호했다. 나이, 지위, 체면 따위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무너졌다. 블루맨들은 통로로 내려와 몸으로 말을 걸었다. 아무 관계가 없는 남녀 관객을 무대로 데려와 즉흥적인 장면을 창조하기도 했다. 몇몇 관객이 지각 입장할 땐 공연을 멈추고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관객은 감정에 충실했다. 어른은 아이로 돌아갔고 아이는 더 아이다워졌다. 블루맨들이 드럼을 칠 땐 빨간색, 보라색, 노란색 형광 물감들이 2~3m씩 공중 부양했다. ‘엘리제를 위하여’와 BTS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친숙한 음악으로 한국 관객의 마음까지 훔쳤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샴페인을 마구 뿌리는 대목에서는 비옷을 입고 있어 다행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블루맨 한 명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무대 바닥에 하얀 우주복이 펼쳐져 있었다. ‘어서 입어야지’라는 눈빛을 받고 오른 다리부터 욱여넣는데 둥둥둥 북이 울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헬멧을 쓰고 백스테이지로 이끌려 갔는데, 스태프가 내 옷에 파란 물감을 계속 발랐다. ‘네 번째 블루맨’이 탄생하는 중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그 시각 무대에선 나와 체형이 비슷한 사내를 거꾸로 허공에 매단 뒤 커다란 캔버스에 쿵 부딪쳐 미술품(?)을 창작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무대로 나왔는데 어리둥절했다. 관객이 나를 향해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두 팔을 들어 만세를 외쳤다. 정체 모를 캔버스를 들고 퇴장했다가 객석으로 돌아왔을 때 공연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타악 리듬이 빨라졌고 블루맨들의 가슴팍에서 물감이 콸콸 쏟아졌다(회당 20~30ℓ 사용). 관객도 모두 일어나 춤을 추며 환호했다.

‘블루맨 그룹’은 코로나 이후 2년간 기피한 집단 체험의 매력을 새삼 일깨워준 쇼였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가 아니었다. 뭉쳐도 죽기는커녕 재밌기만 했다. 한 회당 관객 서너 명은 무작위로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 혹시 블루맨에게 ‘선택’되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공연은 8월 7일까지 코엑스아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