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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드파리] ‘대성당의 시대’ 노래하면… 이곳은 1482년 파리

관리자 │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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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200회 공연하는 마이클 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이번 시즌 중 대표곡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는 음유시인 그렝구아르 역으로 200회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우게 되는 마이클 리. 30년 차 뮤지컬 배우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을 묻자 “나보다 노래와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지만 무대 위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배우는 없다. 관객들께도 그게 보이는 것 같다”며 웃었다/ 마스트 인터내셔널


한국에서만 13번째 시즌, 그중 프랑스어와 영어 내한을 제외한 한국어 공연만 여섯 번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이하 ‘노트르담’)의 막이 오르면 서글픈 집시 기타 음률과 함께 노래 ‘대성당의 시대’가 먼저 가슴으로 치고 들어온다. 기괴한 외모의 노트르담 성당 종지기 콰지모도, 군 장교 페뷔스, 가톨릭 신부 프롤로까지 세 남자가 야생의 아름다움을 지닌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며 비극이 소용돌이친다. 그 시작을 알리는 배역이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는 음유시인 ‘그렝구아르’. 한국계 미국인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50)는 이번 시즌에 그렝구아르 역할로 200회 공연을 돌파하게 된다. 한국어 공연 최다 기록이다.


많은 이가 ‘대성당의 시대’를 들으면 어떤 배우보다 먼저 마이클 리를 떠올린다. 1일 만난 그는 “그 노래는 내 몸 안에 이미 살고 있다”며 웃었다. “그렝구아르가 그 노래를 부르면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가 살아가는 빅토르 위고 원작 속 1482년의 파리가 관객이 있는 현재 서울의 무대 위로 내려오죠. 영어 가사보다 한국어 가사가 훨씬 더 직설적으로 마음에 호소하는 힘이 있어요.”


그에게 이번 ‘노트르담’은 2013·16·18년에 이어 네 번째 시즌. 마이클 리는 “’노트르담’에 담긴 엄청나게 뜨거운 열정이 한국 관객의 마음과 통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감정을 표현할 때 말로 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면 노래를 부르고, 노래로도 부족하면 춤을 추잖아요. ‘노트르담’은 모든 대사가 다 노래인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인 데다, 빅토르 위고의 이야기, 춤과 애크러배틱이 모두 들어 있어 처음부터 ‘민중의 오페라’라고 불렸죠. 한국 관객이 유독 이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마이클 리의 고향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 의사인 아버지와 형을 좇아 스탠퍼드대 의대 프리메드(Pre-Med·의대 입학 예비 과정)를 시작했지만 금세 뮤지컬 배우로 진로를 바꿨다. 그 뒤 1년 반 정도 말도 걸지 않았던 아버지가 첫 공연을 본 뒤에야 ‘네 길이 다르다는 걸 알겠다’고 인정했다. 1993년 미국서 첫 뮤지컬 오디션을 봤고 이듬해 데뷔, 올해로 30년 차 뮤지컬 배우. 브로드웨이에서 주로 활동하며 한국을 오갔다. 그는 “여전히 동양인은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중국 식당 배달원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태권도 액션 배우 같은 역할뿐이죠. 뮤지컬 배우에겐 ‘미스 사이공’ ‘왕과 나’ 등 몇몇 작품만 열려 있고요. 그래서 미국에선 무대에 설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뿐이었어요.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누가 이렇게 살 수 있어!”


‘노트르담 드 파리’를 처음 만난 건 2006년 ‘미스 사이공’ 한국 공연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선후배 친구 배우들이 모두 ‘노트르담’ 초연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때 ‘대성당의 시대’를 처음 들었는데 정말 대성당의 계단을 오르듯 계속 음정이 올라가는 멜로디가 정말 독특하다고 생각했죠.”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한국 공연을 준비할 때 다시 ‘노트르담’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콰지모도나 에스메랄다를 배신하는 군인 페뷔스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렝구아르라니! 뮤지컬 음악을 계속 들어 보며 깨달았죠. ‘아, 그렝구아르는 모든 배역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구나. 관객을 이 뮤지컬의 세계와 연결하는 배역이구나.’ 그렇게 ‘노트르담’과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마이클 리는 “200번 가까이 무대에 서도 여전히 떨리고 긴장된다”고도 했다. “살다 보면 사람은 변해요. ‘위 체인지(We change)!’. 마이클 리도 매 시즌 다른 사람이에요. 다른 욕심, 다른 열정, 노트르담을 새롭게 만드는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죠.” 그는 “점점 우리 배우들 수준이 높아져서 갈수록 더 긴장된다”면서 웃었다. “항상 연습과 공연 시작 때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다짐해요. ‘오늘도 새롭게 만들어보자’, 그리고 ‘나만 잘하면 돼’. 하하하. 다른 배우들은 완벽하거든요. 저만 잘하면 돼요.”


배우를 꿈꾸는 젊은이는 많지만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 마이클 리가 TV 경연 프로그램이나 대구뮤지컬페스티벌 등에 심사위원으로 자주 나가는 것도 젊은 예비 예술가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그는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돈이나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에서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난 죽을 때까지 가난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내에게 청혼할 때도 솔직히 고백했죠. ‘난 평생 배우를 할 거고, 내겐 악기와 같은 이 몸과 얼굴로는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배우의 꿈을 꾸는 분들에게 꼭 얘기해주고 싶어요.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Know your heart)’고요.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라고요.”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인성,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는 고른 실력으로 모두가 그와 함께 공연하고 싶어하고, 관객들은 그의 무대를 보고 싶어하는 배우다.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을 묻자 이 30년차 배우는 여전히 “나는 무대에 서는 걸, 연기하는 걸, 노래하는 걸 사랑한다”고 살짝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관객 분들도 제가 무대에서 행복한 걸 정확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다른 배우가 저보다 더 연기 잘 하고 노래 잘 할 수는 있지만, 나보다 무대 위에서 행복한 배우는 없으니까요!”


마이클 리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세 개를 꼽는다면? “한국어 수업 아직도 받고 있어요. 얼마 전 배운 단어는 ‘부지런한’이에요. ‘hard working’이나 ‘diligent’. 그리고 또, 아직도 ‘부족한(lacking)’. 아직 많이 배워야 하거든요. 마지막으로 ‘감사한(thankful)’.” 부지런하고 겸손하며, 감사할 줄 아는 이 배우는 앞으로도 무대 위에서 꾸준히 빛날 것이다.


-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